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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편집

Hearts of Iron 2의 시나리오는 1936년 1월 1일 00시에 시작하여 1947년 12월 30일 23시까지 진행되며, 2차 세계대전의 전과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대전기, 그리고 냉전의 초기까지 구현되어있다. 그 진행 역시 역사적인 사건들을 반영하지만, 한편으로 유저나 AI의 선택에 따라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역사의 진행 또한 가능하다. 게임의 플레이에서, 유저는 제공되는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를 선택하여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시나리오는 크게 일반 시나리오전술 시나리오로 구분된다.

일반 시나리오 편집

일반 시나리오는 전간기부터 대전기에 이르는 각 특정 시간대의 상황에 따라 만들어져있다. 요컨데 1939년 9월 1일 시나리오(전격전:BLITZKRIEG)를 선택할 시, 독일의 대폴란드 선전포고 직후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으며, 1941년 6월 22일 시나리오(거인의 각성:AWAKENING THE GIANT)로 시작할 시, 바르바로사 작전의 시작 직후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전쟁으로의 길(THE ROAD TO WAR)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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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월 1일, 가장 기본적인 시나리오로 전쟁의 준비가 중점이 된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처음 할 때는 여기부터 시작한다. 독일의 대폴란드 선전포고 까지는 약 3년이 남았으며, 노구교 사건까지는 약 1년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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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집권한지도 수년이 지남에 따라 독일의 정국은 국가사회주의로 단일화되었다. 영도자(Führer)는 이전 협상군이 독일에 강요한 불공평한 베르사유 조약과 국제 질서는 고쳐져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이미 1935년 독일은 군대의 명칭을 국군(Reichswehr)에서 국방군(Wehrmacht)으로 변경함과 동시에 징집제를 시행하였으며, 이는 전체 군대의 수를 10만으로 제한한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국은 과거 대전의 악몽으로 인해 이에 대해 분명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에서 독일을 제어해야 할 프랑스는 단독으로 독일과 교전에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아 영국에 도움을 청하고 있었으나, 영국은 제국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워하고 있었고, 대륙의 문제에 개입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전 독일의 동쪽을 견제하던 러시아는 1차 대전의 여파로 동쪽으로 크게 후퇴하여 그들의 소비에트 연방을 유지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었다.


파일:Manchuguo.jpg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관동군이 일으킨 1931년의 만주사변(Manchurian Incident)으로 만주국이 수립되어있다. 동북의 군벌이던 장작림(張作霖)과 관동군은 다소의 밀월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양측은 서로에 대한 의심이 여전하였고, 결국 일본은 만주에 대한 직접 경영에 나서게 된 것이다. 만주 사변으로 근거지를 잃은 구 장작림의 세력은 장학량(張學良)에게 이어졌다. 이러한 침략에 대응해야 할 중국은 분열되어 있으며, 형식적인 중앙정부이던 장개석의 국민당은 각 군벌로부터 불만족스러운 복종만 얻어내었을 뿐이다. 중국이 국제연맹을 통해서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려 하였으나, 일본은 1933년 국제연맹 탈퇴로 대응하였고, 더 이상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국민당은 또한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과의 내전을 지속하고 있었다. 장개석은 장햑량에 명령하여 일본과의 전쟁보다는 공산당의 토벌에 주력할 것을 요구하여 산서에서 지속적인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몰려오는 먹구름(THE GATHERING STORM) 편집

파일:Scenario 1938.png

본 시나리오는 1.2패치 이후 추가되었다.

1938년 9월 1일,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4국에 의한 뮌헨 협정 직후

1938년 3월, 나치 독일은 오스트리아에 압박을 가하여 같은 독일로 흡수하였다. 이는 오스트리아에서도 다수의 지지를 얻었으며, 이는 유럽 각국의 게르만 민족주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제 히틀러는 유럽 각지에서 독일인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들을 병합하려고 시도하였고, 300만 독일인이 거주중인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트(Sudetenland)가 가장 주요한 목표가 되었다.

이 문제는 금방 유럽 전체로 확대되었는데, 체코슬로바키아의 동맹국이 프랑스며, 또한 그 프랑스를 영국이 지원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겉으로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지만 대전의 그림자는 정부 요인들을 불안에 떨게 하였다. 영국 또한 대전의 여파로 전쟁에 대한 공포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에서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결국 체임벌린(Chamberlain) 영국 총리와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중재 하에 뮌헨 회담을 통해 독일이 수데텐란트를 할양받는 것을 용인했다. 이로 인해 약소국 체코는 무시당했으며 독일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였다. 처음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총리는 유럽의 평화를 지켰다는 환호를 받았으나, 나치는 만족하지 못했고 이내 유럽의 전운은 더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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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국에서는 장학량이 시안 사건을 일으켜 장개석 총통을 체포하였다. 장학량은 장개석을 석방하면서 그 조건으로 제 2차 국공합작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장개석이 이 조건을 이행함에 따라 일본은 중국에의 위기감을 지니게 되었다. 결국 일본은 만주국에 그치지 않고 노구교 사건(盧溝橋事件)을 일으켜 중국에 대한 침략을 단행하였다. 이로서 중일전쟁의 막이 오르게 된 것이다.

국민당 정부는 1937년 12월에 수도 남경까지 점령당하였으나 살아남았고, 대륙으로 후퇴하면서 대일 항전을 계속하였다. 일련의 사태를 본 미국, 영국, 네덜란드는 일본에 대한 경제제재를 결의하였다. 이에 일본은 반발하였고 여기에 중국을 더하여 ABCD포위망이라 비난하였다.

전격전(BLITZKRIEG) 편집

파일:Scenario 1939.png

1939년 9월 1일, 독일의 대폴란드 선전포고 직후

파일:412px-Nazi World War II poster Danzig is German.jpg
독일은 1938년의 협정을 파기하고 1939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를 완전히 해체하였다. 이는 수데텐란트의 할양 요구를 넘어서는 것에 그치지 않는, 한 국가에 대한 교살이었으며 경악한 영국과 프랑스는 마침내 또 한번의 전쟁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이제 총통은 동프로이센과 독일 본토를 연결하는 단치히 회랑을 요구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영유국인 폴란드는 강경대응을 선포하였다. 영국과 프랑스 또한 폴란드의 독립을 보장하였으며 이를 지원할 것임을 명백히 하였다.


이제 동쪽의 광대한 영토를 지닌 소비에트 연방의 동향이 문제가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소련이 폴란드를 지원하여 독일에 대항해줄 것을 바랐다. 소련의 스탈린(Stalin)은 서방 연합국을 위해 피해를 감수해달라는 영국의 요청이 못미더웠을 뿐더러, 소련에 대한 국민감정이 좋지 않았던 폴란드가 소련의 지원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실제적인 지원의 방법조차 없었다. 의심많은 스탈린에게 이것은 독일과 소련이 교전에 나서게 하려는 서방 연합국의 음모로 여겨졌다.

독일 또한 이러한 외교전을 알아차렸고, 소련의 참전을 막기 위해 스탈린에게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독일은 지난 대전을 통해 양면전쟁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만약 영국과 프랑스가 서부에서 참전하고 소련이 동부에서 진격한다면 독일이 이에 대응할 수단은 전무하였다. 때문에 독일은 소련을 묶어두기 위해 폴란드와 동유럽의 세력분할을 제안하였다. 스탈린 또한 이에 호응하였으며, 그 결과 양국 사이에는 독소 불가침 조약;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molotov ribbentrop pact)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유럽 세계 전체에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독일군은 적을 줄이는데 성공하였으며, 이제 폴란드에서 전격적인 승리를 거두어 세계를 놀래킬 것이다. 연합군이 동맹국의 패배를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동안, 스탈린은 폴란드의 동쪽을 얻는 대신 독일의 승리를 용인하기로 했다.

거인의 각성(AWAKENING THE GIANT) 편집

파일:Scenario 1941.png

1941년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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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의 막이 오른 1939년, 불과 한달만에 폴란드는 패배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서부 전선에서의 독일군은 불과 6주만에 연합군을 패배시켰다. 그러나 영국은 뒹케르크 철수 이후로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독일은 영국 본토 항공전으로 영국과 교전하였으나 패전하였고, 이로서 영국은 반격의 불씨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상에서 독일군을 막을 군대는 없어보였으며, 1941년의 시점에서 독일은 북쪽으로는 노르웨이부터 남쪽으로는 발칸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영유하고 있었다.


이제 영도자의 관심은 서쪽으로부터 저 광대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독일은 영국을 굴복시키지 못한 채로 소비에트 연방을 패퇴시킬 것을 결심하였다. 독일과 그 동맹군은 약 300만에 달하는 거대한 인력을 이 작전에 투입하기로 하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로로부터 그 이름을 따와 바르바로사 작전(Fall Barbarossa)으로 명명하였다. 1941년 6월 22일 역사상 가장 거대한 작전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신들의 황혼(GOTTERDAMMERUNG) 편집

파일:Scenario 1944.png

1944년 6월 20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 2주후·소련의 바그라티온 작전 개시 2일전

3년에 걸친 동부전선에서의 전투로 독일은 크게 약화되었다. 소련군은 초기의 충격을 견뎌내고 더욱 강력해져갔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전쟁의 국면을 전환시킨 소련은 3차 하르코프 공방전의 패배를 딛고 쿠르스크 전투에서 승전하였으며, 코르순-체르카시 전투에서 독일군을 패퇴시켰다.

다른 곳의 전황 또한 빠르게 악화되어갔다. 1941년 12월에 있던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영미 연합군의 반격은 태평양과 아프리카에서 벌어졌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은 4척의 항모를 손실하였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엘 알라마인 전투가 벌어져 북아프리카의 독일군이 패퇴하게 되었다. 이로서 지중해를 장악하게 된 연합군은 1943년 시칠리아를, 그리고 같은 해 이탈리아 남부에 상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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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영미 연합군은 스탈린이 요구한 제 2전선을 열기 위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연합군은 프랑스에 상륙하였고 동부에서는 소련군이 역대 최대규모의 반격작전을 준비중이다. 아직 독일에게는 광대한 점령지역이 존재한다. 그러나 삼면에서 포위된 제국의 운명은 몰락을 향하고 있었다.

한번 일본 제국 또한 중국 대륙과 태평양에서의 수년에 걸친 전쟁끝에 괴멸상태에 놓였다. 미합중국 함대는 일본제국의 태평양 방어선을 와해시켰으며, 전략적인 섬들을 대부분 점령해 가고 있었다. 미군의 우세는 명백하며 이제 본토 상륙조차 시간문제일 뿐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도 종막을 향하고 있다…….


전술 시나리오 편집

이하 시나리오들은 일반 시나리오와 달리, 특정한 지역에서 주어진 가용 자원으로 제한된 시간 내에 작전을 성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실제 역사적인 작전들이 주로 포함되며 일부 가상 작전도 존재한다.

황색작전(Fall Gelb)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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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프랑스 전역 - 개전으로부터 9개월이 지났다. 이제 독일의 기갑 부대는 아르덴의 경사가 있는 숲 지역을 통해 서쪽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곳은 프랑스 마지노선의 북부 측면 지점으로서 방어선의 취약점이다. 프랑스 군인들은 아직도 독일과의 국경선에 있는 거대한 마지노선의 강철과 콘크리트 뒤에 있는 초소에 병력을 배치하고 있다. 프랑스는 자신들의 요새를 안전하다고 여기지만, 반면에 독일 군대는 프랑스가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의 규모로 전격전을 이용한 전역을 시작하려 한다. 그들은 전쟁 기계 독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독일의 기갑 부대와 공군 병력에게 굴복하게 될 것인가?


작전명 바르바로사(Operation Barbarossa)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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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6월 22일 독일의 소련 공격 - 핀란드를 상대로 한 겨울 전쟁에서의 실패 이후, 스탈린은 붉은 군대가 아직 미완성임을 깨달았다. 그 뒤로 스탈린은 독일과의 조약으로 안전을 도모하며 군대의 재편성에 박차를 가했다. 프랑스에서의 승리 이후, 영국 공습에서 나타난 독일 공군의 무능력함은 히틀러 시선을 소련이 버티고 있는 동쪽으로 돌렸으며, 총통은 다시 한 번 전격전을 시도하여 겨울이 오기 전에 러시아군을 격파하려고 한다. 독일이 오래지 않아 공격할 계획이라는 징후는 명백하다. 독일의 자랑스러운 전쟁 기계는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스탈린은 아직도 재편성 중인 군대를 가지고 피할 수 없는 독일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아르덴 공세(The Ardennes Offensive)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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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독일의 아르덴 공세 - 연합군은 프랑스 전역을 해방하고 독일 제국의 문턱에 도달함으로써, 라인강을 건너고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려 하고 있었다. 독일이 한때 자랑스러워 하던 병력들의 운명은 독일 제국이 동쪽, 남쪽, 서쪽으로부터 포위되면서 몰락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연합군은 마켓 가든 작전에서 실패를 맛보았고, 이내 병참 문제로 인해 발목을 잡혔다. 때맞추어 소련군이 바그라티온 작전 이후 재보급을 위해 전진을 멈춤에 따라 동부 전선 역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에 히틀러는 서부 전선에서 다시 한번 아르덴의 숲을 돌파하여 벨기에의 연합군을 섬멸하는 반격작전을 구상하였다. 일선 지휘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44년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독일의 기갑 부대는 아르덴 지역의 습격을 통해 4년 전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재현하려 하고 있다. 이제 독일은 마지막 도박을 시도하려 한다…….


남방정복(Southern Conquests)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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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1942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이어진 남방 전역 - 중국에서 벌어진 몇 년간의 전쟁 이후, 일본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점유로 인한 미국의 통상 금지로 압박을 받게 되었다. 경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럽의 지배력이 약한 식민지, 즉 자원이 풍부한 '남방의 자원 지대'를 습격하는 것이다. 일본은 진주만을 습격하였고 이제 남방을 향해 군사를 움직이고 있다. 유럽의 대륙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패퇴하고, 연합군에게 아시아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영국과 영연방의 병력들은 인도, 버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해군 병력은 남중국해를 지배하고 있으며, 영국이 이를 지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영국은 아시아의 근거지를 잃게 될 것인가, 아니면 머지않아 일본군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작전명 망루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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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과달카날 전투 - 일본 해군이 미드웨이에서 패배하면서,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던 태평양에서의 일본군의 공세는 중단되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아직도 연합군의 기지와 보급로를 위협할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공격 의지 또한 확고하다. 1942년 늦여름이 되면서 일본은 다시 한 번 남태평양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코코다 트레일을 따라서, 포트모르즈비를 경유하는 육상로를 장악하려고 했다. 솔로몬제도에 있는 과달카날 섬에서 솔로몬제도 남부와 뉴헤브리디스제도로 향하는 하늘을 제압할 수 있는 공항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 공항은 불과 며칠 후인 8월 중순 무렵에 그 기능을 발휘할 예정이었다. 미군은 이러한 위협에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여 작전명 망루(Watchtower)를 계획, 8월 7일 이른 아침에 미국의 함재기가 과달카날 섬에 나타났으며, 얼마 후 육군들이 상륙했다. 소규모의 병력과 공항 노동자들은 밀림으로 도망쳤으며, 미군은 거의 완공된 공항을 점령하였다. 이 일은 솔로몬제도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던 일본군에게는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섬 대부분은 미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있었고, 비록 현재의 병력으로는 부족하겠지만, 일본군은 몇 주 내에 연합 함대의 지원군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군은 과달카날 섬으로의 실낱같은 보급선을 유지해야 한다.과달카날 섬의 전투는 숙원해 오던 미국 태평양 함대 전멸을 향한 첫걸음이 되거나, 아니면 대 일본 제국의 영원한 공격력 약화의 원인이 될 것이다.


백색작전(Fall Weiss)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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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폴란드 공격 - 몇 년 동안의 병력 증강과 평화적인 영토 확장 이후, 히틀러는 다음 목표인 폴란드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 사건 이후, 폴란드가 히틀러의 다음 목표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1939년 8월 23일에 이루어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 근거하여, 스탈린은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을 지원하여 폴란드와 전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본토와 동프로이센을 나누는 단치히가 폴란드 침공의 명분이 되었다. 비록 폴란드에 용맹하고 국가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칠 군인들이 있다고 해도, 호전적인 두 세력 사이에 고립된 폴란드에게는 승산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 침공으로 독일군에 대한 최초의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며,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전 세계에 알려질 것이다


녹색작전(Fall Grun)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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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공격 이 작전은 가상시나리오이다. -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이후, 제국의 외부에 있는 독일 지역은 체코슬로바키아에 있는 수데텐란트 밖에 남지 않았다. 체코의 수데텐란트 소유를 인정할 수 없었던 히틀러는 프라하에 최후 통첩을 보냈다. 세 방향이 독일 영토로 둘러싸이게 되면서 이 전쟁에서 그들은 독일인이 밀집한 수데텐란트 지역에 있는 강력한 국경 방위 병력만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열세적 상황에서도 체코는 독일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려 하지 않으며 야만적인 병력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용감하게 저항하기로 하였다. 이제 중부 유럽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남아메리카 전쟁(Platinean War) 편집

파일:Southam.png

1942년 독일의 지원을 받는 [[아르헨티나]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브라질과의 전쟁 이 시나리오는 가상 시나리오다. -아르헨티나는 지금껏 독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전쟁이 발발한지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관계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관계는 미국의 비난과 봉쇄의 원인이 되었으며, 그 결과로 아르헨티나 내부에서는 파시스트적 성향이 힘을 얻게 되었다. 반대로 전쟁이 발발한 이후, 브라질은 연합군, 특히 미국, 영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42년, 브라질이 군사적, 경제적 지원의 대가로 연합군에 합류하였지만 그들 국경 바로 앞의 아르헨티나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독일에게서 남아메리카를 지배할 군사력의 지원이라는 매력적인 제안을 받았다.


겨울전쟁(Winter War)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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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소비에트 연방과 핀란드의 겨울전쟁 -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이 발효되면서, 소련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세력권을 넓힐 수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발트 해 국가들을 아무 피해 없이 합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핀란드는 다른 발트 해 국가들과는 달리 소비에트가 요구한 군사 기지의 이용과 영토 할양을 거절했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도움을 줄 거라는 기대와 전쟁에서 핀란드 군인들의 '인내'가 러시아군 10명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 있었다. 소비에트는 오울루를 점령함으로서 핀란드를 반으로 나눈 후, 남쪽에서 헬싱키를 공격하는 방법으로 몇 주 내에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잘못될 것은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사막의 여우(Desert Fox) 편집

파일:Desertfox.png

에르빈 롬멜 독일 육군 원수 지휘 하에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최고점에 달한 북아프리카 전역 이 전술 시나리오에서는 횃불 작전에 대한 언급도 있다. -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은 무솔리니와 그가 이끌고 있는 장군들에게 있어서 큰 재앙으로 다가왔다. 그라치아니 원수가 이끄는 이탈리아군은 영국에 의해 철저히 당했다. 전세가 암울한 다른 지역들에 비해, 북아프리카는 영국에게 희망적인 유일한 지역이었다. 영국군은 리비아에서 그 서투른 이탈리아군을 물리치고 벵가지의 서쪽으로 그들을 추격했다. 하지만 독일은 이탈리아를 지원하기 위해 '아프리카 군단'을 편성하였으며, 가장 유능한 장군들 중 한 명이 지휘를 하여 북아프리카에 파견되었다.


작전명 허스키(Operation Husky)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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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국의 시칠리아 상륙과 뒤이은 독일·이탈리아 반격 - 아프리카 군단의 패배로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국 세력이 퇴각하였다. 이제 연합군이 추축국의 '부드러운 아랫배'를 향해 진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는 독일에 대한 새로운 제2전선을 만들라는 러시아 측의 강력한 불만을 듣고 있었다. 처칠 또한 지중해에서의 대규모 공세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리스는 병참과 상륙지역의 부재로 인해 작전에서 제외되었고, 마크 클라크 장군이 이탈리아 정부 내의 반체제 인사들과 접촉함으로서 이탈리아에 대한 견고한 압박이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이제 연합군의 작전 목표는 시칠리아가 되었으며, 패튼 장군이 습격을 지휘하고 몽고메리와 영국 8군이 지원할 것이다. 총 지휘는 영국의 알렉산더 장군이 맡을 것이다. 독일의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방어를 위해서 최고의 원수 2명을 보냈다. 에르빈 롬멜은 시칠리아를 포함한 남부 이탈리아의 방어를 수행하게 되었고, 알베르트 케셀링은 산업화된 이탈리아 북부의 일부 지역을 방어하게 되었다. 불행히도, 둘 사이에는 이탈리아의 동맹군을 지원하기 위한 전략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병력 배치와 지원에 대한 베를린에서의 지시 사항이었다. 미군과 영국군이 튀니지로 더 많은 병력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 해군은 항구에서 나가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작전명 허스키의 시행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작전명 절대군주(Operation Overlord)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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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 - 1944년 6월, 영국 남부는 거대한 수송 지역으로 변해 있었다. 여기에서 미국, 영국, 캐나다의 병력들은 추축군에게 4년 동안 점령되어 있던 프랑스를 수복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독일의 큰 자랑거리였던 롬멜의 대서양 방벽을 습격할 준비가 된 연합군은 독일에 공포를 불러 일으키려 하고 있다. 이미 영국과 미국의 막대한 해군과 공군이 바다와 하늘을 지배하고 있으며, 연합군은 상륙 과정에서 그로부터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해협의 건너편 프랑스에서는 전쟁에 지친 루프트바페가 미약한 제공권을 획득하고 있었다. 해안에서는 패퇴해왔거나 새롭게 편성된 병력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군이 영국 남부의 항구에 집결하고 있는 미국, 영국, 캐나다 병력과의 피할 수 없는 전투에 대비하고 있다.


작전명 몰락(Operation Downfall)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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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일본 본토 침공 실제로 미국은 이 작전을 추진하였으나 일본의 빠른 항복으로 실시되지 않았다. 이 시나리오는 전쟁 전개의 변화로 인하여 가상 시나리오가 되었다. - 길고 힘든 일본과의 전쟁 끝에, 마리아나 제도, 필리핀, 이오지마,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군은 이제 일본 본토를 향하고 있다. 대일본 제국의 병력들이 기울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제국의 심장부까지 진격해 온 것이다. 맨해튼 계획의 실패 및 공군과 해군에 의한 일본 봉쇄의 비효율성 때문에 작전명 몰락, 즉 일본 침공이 승인되었다. 이 작전은 2개의 임무로 구성될 것이다. '작전명 올림픽'은 큐슈를 침공하는 작전으로서, 점령에는 대규모의 공군이 이용된다. 이렇게 점령된 큐슈는 혼슈를 습격하여 도쿄를 점령하는, 이른바 '작전명 왕관'을 위한 공급 기지로 사용될 것이다. 언급된 작전들은 1944년이 있었던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비해 더욱 대규모의 작전들이며,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군사 작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일본 또한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들 또한 거세고 무자비하다. 일본 해군은 거의 전멸 상태에 가까우며, 적들이 일본의 도시들을 무자비하게 폭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 공군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전술은 가미카제 공격을 하는 것 정도이지만, 일본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제국 내각은 천황의 영광 아래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울 것을 맹세했으며 모든 군인들과 민간인들은 조국과 천황을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이다. 일본의 수많은 정규군들이 침공을 저지하려 할 것이고 수백만의 민간인들로 이루어진 예비군도 있다. 또한 수많은 가미카제 전투기들이 상륙을 저지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들의 자살 공격은 오키나와의 상륙에 큰 걸림돌이 되리라 예상된다. 일본군은 내지 전역에서 미군의 상륙을 방해할 것이며, 또한 미군이 수적으로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점령지에서는 상당한 수의 게릴라 활동도 예상된다. 게다가, 이미 사할린 섬과 쿠릴열도, 그리고 만주 및 한국의 상당 부분을 점령한 붉은 군대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소비에트가 일본 본토의 상당 부분을 점령한다면, 그들은 일본에 대한 점령지 분할을 요구할 것이다. 이것은 어떤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막아야만 한다. 두 번째 세계대전도 이제 막바지에 도달했지만, 이번 전투는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일 것이다. 전쟁에 의한 피로가 발생하기 전에 승리를 이루어 내고 평화 협상을 이루어내야만 한다.


스페인 내전(Spanish Civil War)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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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 프랑코 장군은 스페인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제는 그 노력의 결실을 맺을 때가 되었다. 이처럼 프랑코의 세력이 확장되고 있는 동안, 정부가 내전을 피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작전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는 스페인의 광활한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강력한 병력의 지지를 받으면서, 내전을 시작해서 공화국을 무너뜨릴 준비가 되었다. 프랑코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도움으로 승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패배하여 세상에서 잊혀진 채로 떠돌게 될 것인가? 공화국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세력의 도움으로 파시스트 세력을 물리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산호해 해전(Battle of the Coral Sea)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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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해 해전 -계속된 승리로 막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은 전쟁 기계 일본은 이제 호주와의 사이에 있는 연합군 최후의 보루인 포트모르즈비를 공격하려 한다. 이곳을 점령하면, 떠오르는 태양의 제국은 남태평양을 마음껏 지배하게 될 것이다. 동남 아시아에서 진격하는 일본군을 막으려는 헛된 시도로 함대를 잃어버린 호주는 이전보다 더욱 약해져 있다. 진주만에서의 재난 이후로, 미 해군은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고, 전 세계는 일본군의 진격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본군의 암호 체계가 뚫리면서 포트모르즈비를 공격할 계획이 미군에게 알려진 현재, 미국은 일본군을 막아내고 호주를 구해내기 위해서 항공 모함들을 파견했다. 호주와 그 연합군들은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들 또한 일본군에게 패배하게 될 것인가.

청색작전(Fall Blau) 편집

파일:Blau.png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최고점에 달한 1942년 독일의 소련 남부 침공 본 시나리오는 1.2 버전 이후에 추가되었다. 1941년의 바르바로사 작전의 실패와 그에 따른 소비에트의 반격으로, 독일 육군 사령부(OKH)는 자신의 위치를 사수하여 방어하는 데 중점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소비에트의 겨울 공세(1941~1942)는 겉으로 보기에 큰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였지만, 엄밀히 말해서 주요 목표 달성에는 실패한 작전이었다. 독일의 중부 집단군은 아직 건재하고, 레닌그라드의 포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또한 독일은 이제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1942년의 공세 계획인 '청색 작전'은 돈 강의 서안에 있는 소비에트 병력을 물리쳐서 주요 도시인 보로네즈, 스탈린그라드, 아스트라한을 점령하고 마이코프, 바쿠의 유전 지대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붉은 군대는 약화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후방병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독일의 공격에 대비할 것이다.

같이 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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